로델과 헤어진 뒤 내가 향한 곳은 숲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올 때부터 준비를 마친 상태로 나왔기 때문에 마을을 통과하지 않고 숲으로 난 길을 질렀다. 사람의 흔적과 동물의 흔적, 그리고 그 외의 것들 사이로 난 길이었다.

부드러운 흙이 깔린 길을 걸어가는 동안 수관 사이로 비치는 햇볕과 그늘이 머리 위와 발 아래를 오갔다. 햇빛이 반짝이며 눈을 간질였다. 어느덧 이른 아침이 아닌 시간이다. 

길을 따라 도착한 곳엔 오두막이 한 채 서있었다. 나보다 오래된 게 분명하지만 낡아 삭아 보이기 보다는 손을 타며 세월이 쌓인 게 보이는 모습이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마당은 사람이 드나들며 단단히 흙이 다져진 채였고 오두막에 기대듯 크게 자란 나무가 자리잡은 멋진 장소였다.

나는 달려서 마당을 가로질렀다. 문을 건드리진 않고 바로 오두막 뒤편으로 향했다. 지붕 처마 아래마다 매달아 둔 숲에서 난 온갖 야초가 내 머리 위를 지났다. 바삭하게 마른 것과 아직 싱싱한 식물들을 지나쳐 오두막을 돌아가자 앞쪽에 있는 마당과는 또 다른 공터가 펼쳐졌다.

좁고 긴 형태를 한 뒷마당은 앞마당보다 오간 흔적이 적어 잡초가 자라있었다. 중간중간 정리해둬서 허리 아래 높이에 가늘고 여린 풀들이 태반이다. 새로 난 풀들이 자리 잡은 건너편에는 중앙을 붉게 칠한 나무 판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오두막에 가까운 방향에 두 사람이 있었다.

"저 왔어요!"

화살을 살피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빠가 홱 고개를 들었다.

"얘기도 없이 아침부터 어디 갔다가 오는 거야? 약속한 걸 까맣게 잊었나 걱정했잖아. 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려야 하나 했어."

예상했던 대로 잔소리였다. 내 아빠는 정말 좋은 아빠지만 잔소리가 심한 경향이 있었다. 잔소리의 특성상 같은 얘기를 반복하거나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하거나 아예 허튼 소리라 도움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그리 귀담아 듣지는 않는다. 

나무를 깔아놓은 데크 위로 올라가며 나도 입을 열었다.

"성에 갔다 왔어! 뭐, 안 늦었으니 됐지."

"네가 성에 갈 일이 뭐가 있다고……." 

아빠가 다시 잔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내 목소리가 더 크고 시급했다.

"안녕하세요, 델린다 아줌마!"

이 오두막의 주인인 델린다 아줌마에게 인사를 하는 게 아빠 잔소리보다 훨씬 급한 일이니 내가 아빠 말을 자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빠도 이어지려던 잔소리를 순간 멈추었다. 아주 적절한 화제 전환이었다.

테오랑 똑같은 검은 머리를 불편하지 않게 땋아내린 델린다 아줌마가 아빠와 나를 보며 피식 웃고는 답했다.

"오냐. 더할나위 없이 건강하지. 오늘도 목소리가 우렁차구나, 데시데라타."

"네!"

"좋아. 상으로 내가 깎은 화살을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델린다 아줌마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아줌마가 들고 있던 화살이 위로 뾰족 솟아올랐다. 오늘 아우레타를 위해 아빠와 함께 여우를 잡으러 간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델린다 아줌마가 일부러 준비해둔 게 분명했다. 

선조들도 대대로 사냥꾼이라는 델린다 아줌마는 경험 많고 숙련된 사냥이꾼인지라 도구에 관해서도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전문가였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화살이니 이번엔 틀림 없이 노리던 녀석을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번 펄쩍 뛰었다가 공손한 자세를 취하며 손을 내밀자 델린다 아줌마가 진지한 동작으로 화살을 내 손 위에 올려주었다. 아빠는 우리가 하는 꼴을 보곤 가타부타 말 없이 그냥 고개를 가로 젓고는 본인의 활과 화살통을 챙겨들었다.

"다 했으면 더 늦기 전에 출발하자. 제대로 사냥할 준비 됐지?"

"물론 완벽하지, 아빠! 난 언제나 준비되어 있거든!"

"그래도 숲으로 들어가면 목소리는 낮추도록 하자, 데시데라타. 우리가 잡아야 할 여우가 네 목소리를 듣고 도망치면 안 되니까."

나는 입을 홉 다무는 시늉을 해보였다. 작고 둥글고 방향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과 달리 크고 소리 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는 귓바퀴를 지닌 여우는 작은 소리도 곧잘 알아차린다. 나뭇잎을 밟아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내도 귀를 쫑긋하고는 어느새 눈을 피해 달아나곤 했다.

게다가 숲에 사는 녀석이라 자기 앞마당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조심해서 움직여야 한다. 물론 큰 소리로 떠드는 것도 절대 안 될 말이다. 내가 계속 작게 속닥거리기만 할 수 있을 리 없으니 아예 입을 다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내 입을 다물게 했으면서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게 델린다 아줌마를 돌아보며 인삿말을 건넸다.

"여우 잡으면 들렀다가 갈게."

"못 잡으면 넌 오지 마라, 안토니오. 물론 우리 데시데라타는 빈손으로 와도 환영이야."

나는 소리 없이 얼굴 근육으로만 활짝 웃어보였다. 소음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이 정도 정성이면 여우도 눈물을 흘리며 내 화살을 맞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야 오늘이 아니면 아우레타의 생일이 지나버린다. 그러면 내가 아우레타의 생일에 가장 멋진 선물을 줄 수 없게 되어버리니 간절할 이유가 있었다.

아빠는 내 노력과 무관하게 평범한 소리로 웃고는 뒷마당을 빠져나갔다. 나는 마지막으로 델린다 아줌마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에 아빠를 따라 다시 숲길로 접어들었다. 앉은 자리에서 손을 흔드는 델린다 아줌마의 모습이 금방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델린다 아줌마가 다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최고의 사냥꾼으로 활약하고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테오도 델린다 아줌마의 일을 도우러 다니고 최대한 빨리 기술을 전수받느라 바쁘지 않았을 텐데. 만약 그랬다면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테오와 훨씬 더 자주 같이 놀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오두막을 뒤로 하고 아빠의 뒤를 좇아 숲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각도가 절정에 달할 때까지 아빠와 함께 숲을 온통 돌아다녔다. 그냥 산책처럼 다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었다. 아빠와 나는 동물이 다니는 길을 따라 털과 배설물, 발톱자국 같은 것들을 찾으며 보이지 않는 존재를 추적했다. 

아빠도 나도 신중하게 움직이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느낌이 좋았다. 근거를 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여우를 들고 득의양양 오두막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했다.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오두막으로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곳이 원래 사냥꾼의 오두막이었기 때문이다. 사냥감을 쓸만하게 손질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도구라면 없는 게 없었다. 여러번 생각해도 정말 멋진 오두막이다.

나에겐 기쁘게도 서로 다 아는 사이고 워낙 가깝게 지내기 때문에 오두막에 가서 필요한 걸 좀 쓰는 게 문제가 안 됐다. 테오와 친하게 지내는 장점은 물론 테오와 친하게 지내는 게 첫번째겠지만 두 번째는 그 오두막을 뽑아 마땅했다. 

나도 테오도 가족들끼리도 서로 다 알고 각자가 친했다. 엄마와 델린다 아줌마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고, 엄마와 아빠도 어릴 때부터 알아온 동네 사람이며, 아빠와 델린다 아줌마도 어릴 때부터 알아온 친한 사이다. 

나이가 든 뒤엔 활을 내려놓고 개간한 땅을 관리하고 필요한 거름의 양과 종류를 계산하고 볕과 비 때를 예상하고 영그는 곡식을 수확하는데 매진한 엄마와 달리 아빠는 엄마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농사꾼보다는 사냥꾼에 훨씬 가까웠다. 그래서 델린다 아줌마와도 같은 종사자로서 공감대가 있었다.

요즘엔 아빠도 농사일을 거드는데 바빠서 활을 드는 일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사냥꾼의 감을 잃지 않을 정도로는 유지하는 편이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실제로는 농사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은데도 아직 마을 사람들은 아빠를 사냥꾼으로 대했다.

그냥 활을 쏠줄 아는 것과 사냥꾼으로 인정받는 건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가 사냥꾼이라 인정받는다는 건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신체가 건강하며 여러 기술을 지니고 있다는 걸 뜻하기도 했다. 그런만큼 마을에서 필요할 때는 역할을 다해야 했다.

오늘 아빠가 나와 같이 여우를 잡으러 숲으로 온 것도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떠나기 전에 가족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기 위한 의도라는 걸 나도 알았다. 

아빠는 자신이 비기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냥감의 특성과 추적하고 사냥하는 과정에서 주의할 점을 하나하나 일러주었다. 나는 집중해서 듣고 익혔다. 어떤 건 이미 알고 있었고 또 어떤 건 새로웠다. 알면서도 지키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데시데라타, 너는 결정적인 순간에 매번 마음이 앞서. 마음이 급하면 실수가 생기지. 네 활 쏘는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야. 중요한 순간일 수록 차분하게 한 번 더 생각하고 움직이면 본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야."

아빠의 말에 아주 명확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작게는 말해도 되는 거 알지?"

내가 이번에도 고개만 주억거리자 아빠는 내 얼굴을 한번 더 물끄러미 보고는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우를 잡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응급 상황이 벌어진 피치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내가 아예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 걸 이해한 게 틀림 없었다. 금언을 지켜야 해서 아빠에겐 미처 설명하지 못했는데 잘 이해한 것 같았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여우 추적이 계속 됐다. 처음엔 완만한 구릉지 쪽으로 가보았는데 근래에 들른 흔적은 여럿 찾았지만 정작 여우는 거기 없었다. 

실망하기엔 이르다. 사냥감을 대면할 때는 순간이고 대부분 사냥에 쓰이는 시간은 확신 없이 가능성을 따지며 돌아다니는 데 쓰인다. 

사냥꾼은 신궁 보단 사냥감의 영역과 생태를 알고 계절과 시기를 고려해 예측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활을 쏘려고 해도 일단 넓은 숲에서 자기 영역을 지니고 살고 있는 사냥감과 조우하는 게 우선이다. 덫을 놓는 것도 동물의 이동 경로와 습성을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다. 숲을 알아야 한다.

사냥꾼이 그러하듯 나와 아빠가 머리를 맞대고 여우가 있을만한 장소를 다시 추렸다. 개중에 가깝고 만약 다른 곳으로 다시 이동하더라도 동선이 괜찮을 위치로 먼저 향했다. 그렇게 찾아간 뱀딸기 관목이 우거진 언덕은 허탕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계곡 쪽에서 붉은 털을 지닌 여우를 볼 수 있었다. 내가 바로 활을 들어올리며 화살을 먹이려는데 아빠가 활을 든 쪽 팔을 가볍게 눌러 활을 내리게 했다. 그런 뒤에 간단한 손동작으로 자리를 이동하자는 수신호를 했다. 

당장 활부터 쏠 생각을 멈추고 보니 이 위치는 공기가 흐르는 방향이 좋지 않았다. 거리도 애매했고 여우가 보고 있는 시야각 안이기도 했다. 나는 자신 있었지만 굳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시도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아빠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좀 전에 내가 활을 쏘려고 했던 곳보다 좀 더 가깝고 내 냄새가 여우가 있는 방향으로 가지도 않는 위치였다. 짧고 검은 털이 난 뾰족한 귀가 쫑긋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호흡을 편히 하고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오늘 받은 화살을 줄에 건 뒤 내 팔 길이에 맞는 활을 들며 시위를 당겼다. 시야에 여우의 모습이 똑똑하게 담겼다. 직감적으로 바로 지금이라는 게 느껴졌다. 습관이 든 동작처럼 자연스럽게 깍짓손을 뗐다.

화살이 떠나는 순간 결과를 보지 않고도 내가 성공했음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지!"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의 표정을 보고 내가 확실히 성공했음을 알았다. 내가 펄쩍 뛰어 달려드는 바람에 아빠가 무겁다고 죽는 소리를 냈다. 내가 떨어져 나가자 아빠가 비틀거리며 나무에 몸을 기댔다.

"데시데라타, 너는 이제 다 컸어. 여우도 잡을 수 있고 아빠한테 달려들어서도 안 될 정도로 자랐단 말이야."

"내가 여우를 잡았어!"

"그래, 잘했다. 그리고 아빠는 이제 다 자란 너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도 기억해두고."

"다음 번엔 혼자 잡아 볼 거야!"

"그래……. 확인하러 갈까?"

"응!"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축하의 갈채처럼 들렸다. 화살을 맞고 쓰러졌지만 절명하지 않은 여우를 편히 보내주며 아빠가 사냥 후에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열심히 들었다.

여우를 잡는데 성공했으므로 아빠도 당당하게 오두막으로 들를 수 있었다. 아빠는 델린다 아줌마가 농담한 거라고 우겼지만 내 생각엔 그냥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목표로 했던 사냥감을 가져 가지 않았더라면 델린다 아줌마는 오두막을 편히 쓰게 해주지 않았을 거다.

델린다 아줌마는 사냥에 성공한 걸 축하하며 내가 가져 온 여우의 크기와 빛깔을 칭찬했다. 마당에서 여우를 손질한 뒤 오두막 근처 계곡물이 흘러내린 냇가로 가서 피를 씻고 돌아왔다. 

까다로운 부분은 아빠가 손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내가 잡은 여우는 상태가 거의 완벽했다. 

"이런 건 요즘엔 거의 테오몫이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히 내가 솜씨를 부려보마. 테오 녀석도 손재주가 있지만 연륜은 아직 못 따라 오지."

델린다 아줌마는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했다. 신묘한 솜씨로 가죽에 생긴 구멍을 보이지 않게 숨기는 손작업을 하는 걸 구경하면서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실제로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털이 난 방향을 보고 티나지 않게 만들어주면 돼. 손상이 크면 좀 어렵지만 이 정도는 간단하지."

아빠는 모든 걸 새로 알려주려는 것처럼 새삼스러운 설명을 다시 하기도 했다. 나도 아빠도 충실하게 시간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생각지 못한 청자가 있었다. 델린다 아줌마가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낸 뒤 당부했다.

"간단하더라도 장인의 손길은 다르다는 걸 꼭 기억하거라, 데시데라타."

"내 딸이거든?"

"누가 뭐래?"

아빠가 괜히 불퉁거렸지만 델린다 아줌마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델린다 아줌마가 마지막 손질까지 해준 여우 털가죽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나도 아빠 반응을 볼 틈이 없었다. 이제 오후였고, 나는 당장 아우레타에게 멋진 선물을 안겨주고 싶어서 애가 탔다.

나는 아빠를 서른 번 쯤 재촉하며 마을로 향했다. 

아우레타는 아픈 탓에 바깥 활동이 적어서 아직 또래 친구가 많이 없었다. 조용한 건 상황 때문이어도 새침한 건 타고난 성격 같았다. 

조용하고 새침한 성격이라 아프지 않아도 또래 친구가 우글거리진 않았을 테지만 두 요소가 함께하니 생일에 부를 아우레타의 친구보다 축하하러 들르는 나이대 다양한 지인들이 훨씬 많았다. 다행히 아우레타는 거기에 크게 신경 쓰는 기색은 아니었다.

"페르트, 안녕! 테오는 안 왔어?"

"안녕, 데시데라타. 테오는 아까 잠깐 들렀대."

"그렇구나. 알았어!"

나는 숨 쉬는 구간 없이 말하며 우리 집 식탁 앞에 앉아있는 페르트를 지나쳤다. 그리고 가까스로 여섯 명까지는 끼어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식탁 위에 놓여있던 물건들을 한쪽으로 쫙 밀어낸 뒤 오늘 사냥의 성과물을 자랑스럽게 펼쳐보였다. 

아우레타가 귀여운 밤색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로 여우를 잡아온 거야?"

"그래, 맞아! 내가 여우를 잡아왔어! 언니가 준비한 아우레타의 생일 선물이야. 정말 멋지지?"

"응. 멋지네."

아우레타가 방긋 웃었다. 아우레타는 양갈래로 머리를 묶고 하늘색 리본으로 머리카락을 장식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동생의 미소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냥을 성공한 기쁨과 아우레타에게 진짜 선물을 한 기쁨 속에서 내가 힘차게 외쳤다.

"아우레타는 이 언니만 믿어!"

아우레타가 알았다며 히히 웃었다. 하지만 내가 아우레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나는 아우레타가 앉은 자리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며 내 진심을 말해주었다.

"나도 훌륭한 사냥꾼이야. 그러니까 아빠가 없어도 불안해 할 필요 없어. 아빠가 하는 일은 나도 할 수 있으니까."

"안 불안해. 음, 아마 불안이랑 좀 다른 거야. 사실 아빠가 없으면, 좀 외로울 것 같아."

"아, 그런가?"

외로울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도 내가 해결해줄 수 있었다. 나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아우레타에게 말했다.

"그것도 걱정하지 마. 내가 아빠 생각도 안 날 정도로 매일매일 재밌게 놀아줄 테니까!"

아우레타가 키득거렸지만 아빠는 좀 서운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아빠 생각은 종종 해줘. 이틀에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

음, 하긴 그래도 아주 생각을 안 할 수는 없겠다. 진지하게 1초 정도 생각한 뒤 괜찮은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럼 이틀에 한 번 생각날 정도로만 재밌게 놀아줄게."

내 선언을 들은 아우레타가 킥킥 웃었고 아빠도 웃었다. 내가 여우 가죽을 아우레타의 머리 위에 덮어주자 페르트도 결국 웃었다. 아우레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선 슬그머니 머리에서 여우 가죽을 내렸다. 

아빠는 엄마를 도우러 가야 한다며 내게 아우레타를 맡기고 집을 나섰다. 엄마는 정오 쯤에 잠시 돌아왔다가 작물을 돌보러 나갔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가 바쁜 동안 나는 오늘의 주인공인 아우레타의 곁을 지키고 손님을 맞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동안 아우레타를 지키고 있던 페르트도 조금 더 머물다가 돌아갔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우리집에 들러 아우레타의 생일을 축하했다. 손님을 맞이하고 절인 과일을 넣고 구운 케이크나 귀여운 인형 따위의 선물을 챙기는 것도 내 몫이었다. 하루가 정신 없이 지났다.

엄마와 아빠는 저녁이 되어서나 돌아왔다. 시간이 늦어 다같이 손을 모아 재빨리 식사 준비를 했다. 우리가 바란대로 버터를 잔뜩 넣고 치즈도 아낌 없이 들어간 스튜도 저녁상에 올랐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멋진 시간이었다.

그렇게 가족끼리 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끝으로 아우레타의 여덟 번째 생일이 지나갔다. 아우레타의 특별한 생일도 언제나처럼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와 하루의 끝을 맞이하다니 아무래도 이 세상은 눈치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아우레타의 생일에 제대로 된 선물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빠가 조금 도와주긴 했지만 내 나이에 이 정도 실력을 지닌 사냥꾼은 별로 없을 거다. 게다가 나는 농사일도 잘 도우니까 또래 중에선 비슷한 수준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편이지.

하지만 아빠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긴 너무 멀고, 또 어딘지도 모르고, 왜 가야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리고 그냥 아빠가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슬그머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라 초를 밝히고 설거지를 하는 아빠의 뒷모습이 보였다.

"안 가면 안 돼?"

"응? 데시데라타?"

아빠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돌아보았다가 질문의 뜻을 뒤늦게 이해한 낯을 했다. 내 질문에 대답을 생각하는지 아빠가 잠깐 손을 멈추고 침묵했다. 생각 끝에 아빠가 수세미를 내려 놓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데시데라타는 아빠가 안 갔으면 좋겠어?"

"응."

"하지만 아빠가 안 가면 마을의 다른 사람이 가야 할 거야. 데시데라타는 아빠 알지? 아빠는 활도 잘 쏘고 사냥도 잘 하고 길도 잘 찾고 무기나 도구도 잘 다루잖아."

"그건 델린다 아줌마가 더 잘하는데."

"델린다는 몸이 아프잖아. 그리고 요령은 내가 더 낫지. 헤어지는 게 섭섭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아빠가 가야 해. "

나는 초를 밝혀둔 주방에서 손에서 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아빠를 물끄러미 보았다. 아마 아빠 말이 맞겠지.

아빠가 만능은 아니지만 이미 가기로 한 사람을 빼놓으면 누구를 보내도 안심되는 사람이 없기는 했다. 싸우지도 못하는 사람이 끌려가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앞집 아저씬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니까. 

아빠는 활도 잘 다루고 요령도 없지는 않으니 괜찮을 것도 같았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대신 무사히 돌아와야 해."

"당연하지. 가족을 두고 아빠가 안 돌아오면 안 되니까. 너희 엄마는 그래 보여도 마음이 여리잖아. 내가 있어야지."

"뭐가 그래 보인다고?"

갑자기 들려온 엄마의 목소리에 아빠의 몸이 흠칫 튀었다.

"어, 나는 당신 없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했을 걸?"

당연히 엄마도 아빠가 한 신소리를 정말로 믿지는 않는 듯했다. 내용은 몰라도 방금 안 얘기는 저런 소리가 아니었잖아. 하지만 진실을 아는 나도 따로 더 말을 얹지는 않았다. 

엄마가 아빠의 어깨를 툭 치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빠 방해하지 말고 방에 가서 자야지. 시간이 늦었잖아."

"잠 안 오는데?"

"그럼 불 끄고 누워있어."

"그러면 졸리잖아."

"그렇지."

엄마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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