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바로 황제의 궁을 빠져나가 잠시 몸을 의탁하고 있는 여섯 번째 궁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엔 방금 있었던 일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를 했다. 너무 큰일이 연달아 일어나 머리속이 뒤죽박죽이라 아직 차마 무어라 말할 준비가 되지 않은 탓도 있었다. 하지만 릴리에겐 지금 당장 해결을 봐야 하는 다른 일이 우선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릴리는 내심 긴장을 ...
나는 은은하게 웃고 있는 로델과 얌전히 선 페르트를 보았다. 지금 상황을 보자. 로델이 결혼할 사람을 페르트는 벌써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 소식조차 방금 들었는데. 페르트와 로델의 사이가 그냥 달에 한두 번 정도 약을 전달하고 가는 수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둘이 꽤 친해보이네? 자주 봐?" 로델과 페르트가 멀뚱히 서로를 보았...
로델의 설명에 의하자면 옛날에 벨라 아줌마가 로델의 병 얘기를 건너건너서 전해 듣고는 원인을 알 것 같다는 얘길하셨다는 걸 다시 건너 건너서 들은 영주님이 또 다시 건너 건너 인연으로 어렵게 모셔왔다고 한다. 로델에 이어 페르트가 보충했다. 로델의 병이 며칠만에 낫게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던 터라 오래 머무르거나 주기적으로 찾아와야했고, 벨라 아줌마는 ...
예쁜 녹색 옷을 입은 아우레타의 모습은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어디 가?" "루체 보러 가." 아, 그러고 보니 아우레타가 어제 친구네 집에 놀러 갈 거라고 했었다. 그 친구가 루체였나 보다. 최근엔 내가 직접 지켜보진 못했지만 아우레타의 첫 번째 친구기도 하고 최근까지도 둘이서 꽤 친하게 잘 지내는 듯했다. 문득 루체의 언니가 젬마라는데 생각이 미쳤...
테오는 어릴 때부터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곳에 지내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자주 섞이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 그러니까 마을에 있는 다른 또래랑 친해지는 게 나쁠 건 없다 생각했다. 지금까진 별로 그러지 못했으니까. "내 생각엔 좋은 일 같은데 테오는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여. 왜 그래?" 테오는 멈칫하며 나를 보더니 시선을 돌려 편지 꾸러미를 보았다. 테...
때마침 의문의 난입자가 입을 열었다. "허락받지 않은 손님이 보면 안 되는 걸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겁니다." 릴리가 찔끔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금지된 장소를 밟았으니까. 저항히 약해진 틈에 난입자가 두 사람을 데리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온실 안의 산책로는 외길인줄 알았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새로운 길로 그들을 이끌었다. 이쪽에서...
안타깝지만, 젬마가 틀렸다. "테오 집은 숲에 있는 게 아니라 언저리에, 바로 울타리 바깥에 있어. 그렇지만 아무튼 테오가 자경단에 있는 건 맞아." "으응, 그렇구나. 네가 시간이 되면 뭐 하나 물어봐도 괜찮을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데 좀 궁금해서." 내가 얼마든지 물어보라 했을 때 별생각 없긴 했지만, 아마 이 다음에 젬마가 할 질문을 엄청나게 열심...
나는 테오와 페르트와 함께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 커다란 고목 뒤편에 숨은 작은 물줄기를 찾았다. 그걸 따라 올라가니 정말로 목소리들이 속닥거린 장소가 나왔다. 맞을 수도 있다 생각했으니 와본 거긴 하지만 정말로 목소리가 말한 장소가 나오니 놀라웠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물이 솟아나는 곳에 있는 돌을 집어들었다. 테오와 페르트가 보는 앞에서 돌을 ...
온실 안의 다습한 환경으로 인해 릴리의 머리카락도 조금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필리엔이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릴리의 뺨을 건드리자 습기를 먹은 금빛 머리카락 한 가닥이 필리엔의 손끝을 따라 릴리의 뺨에 들러붙었다. "괜찮아요, 릴리?" "필리엔? 왜 그래요?" "어지럽거나 하지는 않아요? 두통은요? 감각이 이상한 부분은 없고요?" 안절부절 못하며 자신을 챙기...
젊은 기사는 잔뜩 긴장한 채 부고를 알렸다. 시신은 그곳에서 화장했다며 아빠가 쓰던 물건을 돌려주었다. 아빠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묻는 엄마의 목소리는 낮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꼿꼿하게 서서 침착하게 대화한 뒤 소식을 알리러 온 기사를 전송하기까지 했다. 기사는 떠나기 전에 성에서 위로금을 전하러 올 거란 얘기를 했다. 다시 세 가족만이 남았다. "...
릴리는 잠시 서있다가 돌아온 길 그대로 다시 밟아 알현실을 나갔다. 가봐도 좋다 했으니 가면 되겠지.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사람이 없어 여기서 뭘 더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올 때는 어색하게 셋이 왔는데 나가는 건 혼자 훌훌이었다. 릴리는 문을 나서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아직 실내건만 환한 빛이 비쳐들어오는 게 보였다. 저도 모르게 긴장해서 시야가 좁...
마을에 작은 축제가 열렸다. 실제로 무슨 특별한 시기인 건 아니지만 앞집의 에도아르도 아저씨가 전날 다리를 다친 염소를 잡아서 마을 사람들과 나누며 겸사겸사 축제판이 됐다. 어떤 사람들은 재빨리 활쏘기 대회를 준비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재빨리 무화과 빵을 잔뜩 구웠고 또 어떤 사람들은 지난 축제 때 지어입었던 옷을 입고 나와 기분을 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